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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자아인식으로 가는 하나의 길 GA 16
    나의 서재 2026. 2. 1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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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in Weg zur Selbsterkenntnis des Menschen(1912) Rudolf Steiner

     

    인생에 더 확고하게 서 있는 사람일수록, 일상생활의 지성적, 감성적, 도덕적, 사회적 현존의 과제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생활 방식에서 더 건강하게 초감각적 세계의 체험을 하게 만드는 영혼 능력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은 나의 다른 저서인 <고차 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GA 10)의 보충이며 확장이기도 하다.

    https://lifenlight.tistory.com/228

     

    고차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

    Rudolf Steiner 1. 고차 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모든 사람에게는 고차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우리보다 고차적인 존재가 실재한다는 절실한 감정을 우리 속에서 개발하지 않

    lifenlight.tistory.com

     

    1. 육체에 관한 진정한 표상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신체, 이것은 현재 영혼 체험의 표현으로서 살고 있다. 신체 속에 일어나는 과정은, 영혼이 신체를 통해서 살고 신체 속에서 스스로 체험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신체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위해서, 영혼 체험을 위해서 진행되지만, 언젠가 이 신체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법칙에 예속될 것이다. 인간은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신체의 소멸과는 무관한 영혼의 삶에 대해서도 역시 알고 싶어 한다. 이는 당연히 이해되는 일이다. 이는, 이 죽음의 체험이 전혀 사적이지 않은, 순수한 인식 질문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죽음에 대한 사유는 자신을 위해 의미심장한 것이 아니라, 그 사유가 삶을 환하게 조명하기 때문에, 바로 그런 연유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라는 느낌이 생겨난다. 결국 인생의 수수께끼는 죽음의 본질을 통해서 인식해야 한다는 시각에 어쩔 수 없이 당도하게 된다. 

     

    2. 요소체 혹은 에테르체에 관한 진정한 표상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신체 외부에서 실행되는 체험은 신체 속에 있으면서 하는 체험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띤다. 신체 안에서 영혼은 감각적인 신체를 나머지 세계와 분리된 것으로 느낀다. 영혼은 신체를 자신에게만 속하는 것으로 지각한다. 신체 외부에서 자신의 내면과 자신에게서 체험하는 것에 있어서는 사살이 그렇지 않다. 신체 외부에서는 사람이 외부 세계라 부를 수 있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감각적 삶에서 손이 자신에 연결되어 있듯이, 신체 외부에서 인간은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3. 요소 세계의 형안적 인식에 대한 표상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초감각적인 기의 형상은 특히 식물의 씨앗을 관찰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씨앗에는 감각적 본질이 특정한 관계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초감각적 본질은 굉장히 다채롭다. 씨앗은 초감각적 세계에서 나와 식물의 성장과 구축에 관여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이제 눈길을 지구로 돌려 보자. 전체 지구를 초감각적으로 관찰하면 하나의 기(氣) 존재가 나온다. 이 기의 존재는, 우리가 지구 속과 지구상에서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생성되기 이전에 이미 있었다고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현재의 지구 이전의 시간에 이미 지구의 생성에 관여하고 일했던 초감각적 힘들을 만나 체험하게 된다. 사람이 이렇게 체험하는 것을 식물과 지구의 에테르적 혹은 요소적 기본 존재, 혹은 식물과 지구의 신체라 부를 수 있다. 이는 사람이 육체의 외부에서 지각할 때 이용하는 그 신체를 요소 신체 혹은 에테르체라 부르는 바와 마찬가지다.

    초감각적 세계에 대한 침착하고 평온한 태도는 필수적이다. 이 태도는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분명하게 경험해 보고 싶다는 타는 듯한 갈망과 아주 거리가 멀다. 다른 한편으로는 초감각적 세계에 대한 개인적 무관심 역시 그와 똑같이 먼 거리에 있다. 타는 듯한 갈망은, 잘 보이지 않게 하는 안개 같은 어떤 것을 통해 신체에서 자유로운 관조를 흐릿하게 만드는 식으로 작용한다. 

     

    4. 문지방의 수호자에 대한 표상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제 인간이 영혼 유랑을 계속 하려면, 육체 안에서 사는 삶에서는 필요치 않았던 용기와 용맹을 주는 힘이 내면에서 생겨나 그 고통스러운 체험을 견뎌낼 수 있는 쪽으로 인도되어야 한다. 그런 힘은 오로지 진정한 자아인식을 통해서만 생겨난다. 근본적으로 보아 인간은 이 발달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지금까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조금밖에 알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일어나야 할 것은, 인간이 보통의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진실이라 느꼈던 것을 초감각적 세계에 들어설 때에는 내려놓을 수 있고, 사물을 느끼고 판단하는 다른 양식을 받아들일 능력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감각 세계로 돌아왔을 때, 역시 이 세계에 대한 정당한 느낌과 판단 양식을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야 한다. 두 가지 세상에서 사는 것을 배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두 세상에서 완전히 다른 식으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5. 아스트랄체에 관한 표상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이 요소체를 통해 어떤 것을 체험하기 위한 능력을 습득하지 않은 한, 요소체는 잠을 자는 상태에 있다. 인간은 언제나 요소체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잠자는 상태의 요소체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영혼 생활을 강화함으로써 요소체가 깨어나기 시작하는데, 초반에는 그중 한 부분만 깨어난다. 인간이 자신의 요소 존재에 의해 점점 더 많이 일깨워지면, 그와 더불어 요소 세계에 점점 더 익숙해진다. 감각 세계에서 사랑 능력을 강화할수록, 더욱더 많은 사랑 능력이 초감각적 세계를 위해 영혼에 남아있게 된다. 영혼에 남은 사랑 능력이 초감각적 세계의 개별적인 것에 대해 지니는 관계를 보자면, 예를 들어 사람이 감각 세계에서 어떤 식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식물과 연결되어 있는 진정한 초감각적 존재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 주제에 있어 착각하기 쉬운 것은, 예를 들어 어떤 사라밍 감각 세계에서 아무 관심 없이 어떤 식물을 스쳐 지나갔다 해도 그의 영혼 속에는 이 세계에 대한 무의식적인 애정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 사람이 초감각적 세계에 들어서면 그 숨겨진 애정이 깨어나게 된다. 초감각적 세계의 존재들(아스트랄체)과 합일하는 데에는 사랑 외에도 존경, 경외와 같은 영혼의 다른 속성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영혼은 자신의 속성 자체로 인해 접근이 가능한 존재만을 초감각적 세계에서 만나게 된다. 그 존재들에 이르는 문은 초감각적 존재들의 모형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통해 열리고, 그로써 결국 초감각적 세계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생겨난다. 

     

    6. 자아체 또는 사고체에 관한 표상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요소체로 건너가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존재가 확장되는 듯한 어떤 것을 감지한다. 반면에 아스트랄체로 들어가 친숙해지는 과정에서는 다른 존재로 건너뛴다는 느낌이 든다. 그곳에서 수많은 존재로 이루어진 정신세계가 그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낀다. 여러 방식으로 그 정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거나 그들과 유사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존재들이 서로 간에 어떤 관계에 있는지 차츰차츰 배워 알게 된다. 인간 의식을 위해 세계가 정신 쪽으로 확장된다.

    "육체를 통한 삶에서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죽은 뒤에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 영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진정한 연구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7. 초감각적 세계안에서 하는 체험 양식에 대한 표상을 형성하고자 노력한다

    스스로의 발달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본성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계발되기를 고대하며 영혼 속에 들어 있는 힘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버려둔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아계발을 위한 힘은 모든 인간 영혼 속에 들어있다. 사람들이 그 힘과 그 힘의 의미를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이라도 경험하기만 한다면, 그것을 계발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면 한 가지 체험에 언제나 그와 짝을 이루는 다른 체험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어떤 체험을 했다면 그에 속하는 다른 체험이 절대 빠지지 않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말이다. 견뎌내야 할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을 정말로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그 사람에게 동시에 주어진다. 침착하게 집중해서 그 힘에 관해 숙고하고, 영혼 속에 현현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채기 위해 시간을 둔다면 말이다.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더라도 그와 동시에 그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 역시 주어진다는 확신이 여혼 속에 있다면, 그리고 그 힘에 자신을 연결시킬 수 있다면, 평범한 인생에서 어떤 일의 결과로 일어났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거라 생각되는 종류의 체험도 마치 구경꾼처럼 대하는 경지에 도달한다. 그래서 초감각적 인식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사람은 내면에서 오르락내리락 출렁이는 감정의 파도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경험하더라도 감각 세계의 인새에서 완전한 평정의 태도를 보인다. 인식의 길을 올바르고 정당하게 걸어왔다면,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

    인식의 길 중에 최상은 언제나, 힘찬 사고나 강한 느낌을 가지고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감으로써 영혼 생활의 강화나 집중을 통해 초감각적 세계에 도달하도록 하는 길이다. 사고와 더불어 사고 속에서 집약적으로 사는 것, 느낌과 더불어 느낌 속에서 집약적으로 사는 것, 그리고 영혼의 모든 힘을 한 가지 사고나 느낌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동안에는 한 가지 사고나 느낌이 의식을 온전히 채워야 한다. 예를 들어 영혼에 어떤 확신을 주었던 생각에 몰두한다. 그 생각이 얼마나 확신할 가치가 있는지는 일단 완전히 차치하고 계속해서 그 생각과 더불어 살아 결국에는 그것과 완전히 일치되도록 하는 것이다.

    영혼의 내적 침잠은 생활 습관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인생의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 이는 호흡이 육체의 삶을 위한 전재 조건인 것과 마찬가지다. 내적인 침잠을 통해 영혼의 힘을 집약시킬 수 있고, 그렇게 집약시키는 동안 그 힘은 더 강해진다. 단 내면으로 침잠하는 동안에는 외적인 감각 인상과 그에 대한 어떤 기억도 영혼 생활에 섞여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평상시 인생에서 경험한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은 절대적으로 침묵해야 한다. 그렇게 완벽하게 홀로 된 영혼이 인간 스스로 원하는 것에, 영혼 속에 오로지 그것만 있다는 듯이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초감각적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힘은 인간 스스로 내적인 침잠을 통해 성취한 것에서만 올바른 방식으로 자라난다.

     

    내면에서 체험하는 모든 것을 그 세계의 다른 존재한테 남김없이 드러내고, 그로써 자신의 모든 체험을 다른 존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 아무 것도 감출 필요 없이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고차 세계에서는 '아름다움'이라 명명될 수 있다. 그리고 고차 세계에서 이 개념은 가차 없는 정직함과, 한 존재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것을 그대로 진솔하게 살아낸다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반면 내면에 지니는 내용을 외적인 현상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 자신의 체험을 내면에 담아두고 특정 속성에 있어 자신을 다른 존재한테 보여주지 않고 숨기는 존재는 '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존재는 자신의 정신적 주변 환경을 피한다. 정신세계에서 '추하다'는 '스스로를 표리부동하게 드러내기'와 동일한 개념이다.

     

    8. 지상에서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관조하기 위한 표상을 형성하고자 노력한다

    정신 현존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전체적인 발달을 위해 육체의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필시 감각 현존 안에서 그 육체의 삶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혹은 고통스럽게 짓누르는 방식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현존 안에서는 좋아하거나 편안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본질이 올바르게 발달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을 주시하기 때문에 역시 그 육체의 삶을 추구한다. 

    숙명에 있어서도 역시 그와 유사하다. 인간이 자신의 숙명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드는 일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일도 정신 현존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 준비했는지, 행복하거나 고통스러운 이러저러한 일을 감각 현존에서 겪게 만드는 그 원인을 어떻게 스스로 야기했는지, 그 모든 것을 관조한다. 이 점에 있어서도 인간이 감각 현존 안에서만 체험하는 한, 자신이 스스로 인생의 이러저러한 상황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 해도, 인간은 정신 현존 안에서 초감각적 통찰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지니고 있다. 그 통찰이 결국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만든다.

    "너는 극히 고통스러운 일이나 마음에 전혀 들지 않는 사건을 겪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체험만 전반적인 발달 과정에서 너를 한 단계 더 진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감각 현존을 근거로 하는 단순한 판단으로는 지상에서 보내는 생이 인간을 자신의 전반적인 발달에 있어서 얼마나 진보시키는지 절대로 알아볼 수 없다. 감각적인 지상 현존 이전에 살았던 정신 현존을 알아보고 나면, 왜 인간이 정신 현존 안에서 감각 현존을 위한 특정한 양식과 숙명을 추구하는지 그 근거 역시 관조할 수 있게 된다. 그 근거는 훨씬 더 이전에 지상에서 살았던 전생으로 올라간다. 그 전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 전생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능력을 얻었는지, 그에 따라 그 전생에 잇따르는 정신 현존 안에서 전생에 완벽하게 경험하지 않은 것을 지상에서 지속할 새로운 생에서 더 보완하겠다고, 불완전하게 머문 능력을 더 완벽하게 만들겠다고 염원하고 다짐한다. 예를 들어 지상에서의 한 생에서 타인에 부당한 행위를 했다면, 그 생에 이어지는 정신 현존 안에서 그에 대해 느끼기를 그 행위 때문에 세계 질서가 무너졌으니 다음 생에서 그 부당한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필수적으로 그 해당 인물과 함께 지상 현존을 보내야겠다는 식이다.

    영혼이 더 발달해 앞으로 더 나아가면 시야가 넓어져 지상에서 보낸 일련의 인생들을 조망하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더 우월한 '나'의 진정한 삶의 과정을 관찰하고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 인간이 반복되는 지상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총제적 현존재를 지상에서 거쳐간다는 것을 관조한다. 그 뿐 아니라 지상의 인생과 법칙적인 연관성을 지니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인생 과정이 반복되는 지상의 인생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도 관조한다.

    인간의 총체적 현존재는 인생이 끝없이 반복하면서 계속되는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정 횟수의 인생이 반복되고, 그 전과 그 후에는 완전히 다른 현존 양식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전체 과정 안에서 지혜로 가득찬 발달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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