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인피니트 웨이(The Infinite Way) - Joel Goldsmith
    나의 서재 2023. 2. 26. 10:41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 그러니 육신은 육신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말씀'이기도 합니다. 육신이 되더라도 그 본질이나 성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원인(말씀)은 결과(육신)로서 눈에 보이게 되지만, 육신의 본질이나 정수는 여전히 '말씀'이고, '영'이고, '의식'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 세상을 지배해 온 모든 문제들은, 두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믿음이나 이론에 근거합니다. 하늘 왕국, 곧 영적인 삶이 따로 있고, 물질 세상, 곧 죽어질 존재가 따로 있다는 믿음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에 바탕으로 깔려있어 작동하기 때문에, 세상의 풍경들을 그토록 모순과 갈등과 문제의 연속으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인간의 그릇된 개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현실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세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해하더라도, 우주는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에 건강과 조화를 가져오는 일은, 필멸의 물질 우주를 없애거나 변화시키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우리의 제한된 관념을 고치는 데에 달려있습니다.

    신의 말씀이나 영적인 의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성보다는 느낌이 더 필요합니다. 성서의 말씀 또한,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적 의식의 발달은 존재의 조화를 더 많이 느끼게 되는 은사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거나, 냄새를 맡는 것으로는 영적인 진실이나 그 조화를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기능, 곧 느낌을 통해서 작용하는 직관을 사용해야 합니다.
    영적 자각이 싹트기 시작하면, 우리는 내면에서 우리에게 오는 생각에 보다 수용적이게 됩니다.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됩니다. 신령스러운 '영'에 조율이 되어, 존재의 신성한 조화를 느끼게 되고, 신의 현존을 실제로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오감을 초월한 직관의 기능으로 인해 우리는 신령스러운 것에 예민해지고, 수용적이고 반응적이 되며, 이러한 영적인 거듭남의 결과로 우리의 새로운 존재를 살기 시작하게 됩니다.
    진리를 알고 싶어서 문자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이, 이제는 진리의 영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이제는 진실을 느끼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영적인 눈을 뜰수록 문자에 덜 집착하게 되고, 느끼는 일에 더욱 열려 있게 됩니다. 진리에 대한 지각이나 인식도 '느낌'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느낌'에 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우리가 개인의 에고를 벗어버리고 우리의 참자아에 대한 의식, 곧 우리 자신의 실재인 '신 의식'(divine consciousness)을 깨달을 때, 우리는 불멸에 도달하게 됩니다. 
    깨달은 사람은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적 의식의 발달은 우리가 시각, 청각, 미각, 후각을 통해 인지하고 있는 것이 사물의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깨달음은 무엇보다 먼저 평화를 가져다주고, 다음으로는 자신감과 확신을 가져다줍니다. 그것은 세상의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우리를 쉬게 해주고, 모든 좋은 것들이 은총을 통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게 해줍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얻기 위해서나 성취하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총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신의 선물입니다. 

    기도는 조화와 온전함, 신, 기쁨, 평화, 주권의 실현을 경험하는 일종의 의식 상태입니다. 기도, 곧 하나됨의 친교는 개인에게 특정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기도 하고, 이는 자신의 참된 존재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열매 맺기도 합니다. 영적 삶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실상'을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펼쳐집니다. 신께 어떻게 얼마나 기도를 드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펼쳐 보이시도록 우리가 허용하는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더 높은 차원의 기도입니다. 고요함 가운데, 신의 현존을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느낌이나 인식이 곧 우리의 의식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의 활동이고, '실상'의 나타남이며, 그것이 곧 그리스도요, 우리 자신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보통 감각의 세계 속에서, 감각의 대상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럼으로써 선과 악, 고통과 쾌락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자기 탐구와 명상을 통해서 정신적인 면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될 때, 우리는 더 고상한 생각을 하게 되고, 따라서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정신적 자질이 더욱 다듬어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인내심을 갖게 되고, 더 친절하고 자비로워지며, 더 쉽게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모든 피조물과 하나됨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더욱 사랑에 넘치고, 온화하고, 참을성 있고, 이해심이 많게 됩니다. 그때가 되어야 우리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위대한 가르침을 성취할 수 있게 되고,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왕국을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성전을, 다시 말해 신께서 창조하시는 사람과 우주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영혼의 힘에 접속되면, 우리 안에서부터 나온 이 힘이 우리 일상생활의 모든 곳에 가 닿아서 우리들 존재의 매 순간에 영감과 아름다움과 평화와 기쁨과 조화를 주고, 우리의 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랑으로, 이해로, 성공으로 옷 입혀 줍니다. 물론, 감각의 고통과 쾌락으로 너무 바쁜 사람들은 영혼의 영역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이 생명수를 마시라는 초대가 확대되어 왔으며, 어느 시대에나 자신의 내면에서 영원한 젊음과 평화를 찾은 사람들이 있어 왔습니다. 

    우리가 충만하고, 행복하며 번영하는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생각, 우리 자신의 공급이나 우리 자신의 건강을 위한 생각을 내지 않고서도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복지에 필요한 모든 선은 우리가 애씀을 포기하고, 더 많이 얻고 성취하고 달성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가 이 지구에 온 운명을 성취하는 데에만 더욱더 의식을 집중할 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풍요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개인의 모습을 갖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성취하는 '의식'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자리매김에 연연하지 않고 수입이나 건강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신께서 우리를 통해서,  혹은 우리로서, 자신의 운명을 성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더해진 모든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명상은 '영혼'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영감은 그 길입니다. 우리가 아침이든 낮이든 밤이든, 5분이든 10분이든, 들리지 않는 소리를 '경청'하려는 열린 마음으로 고요히 앉아 있는 법을 배울 때,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서 '고요한 작은 소리'를 기다리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명상의 습관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영감이 우리를 소유하고 우리를 우리의 '영혼'의 안식처로 인도하도록, 명상의 기술을 개발하십시오. 이것이 새로운 탄생의 시작이며,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언어를 배웁니다. 인생이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영적인 언어로 본다면, 명상은 기도입니다. 참된 기도인 명상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신의 활동, 신의 본질, 그리고 신이 창조한 세상의 본질에 대해 묵상하는 것입니다. 기도란 우리의 '참자아'와의 하나됨, 개인의 '영혼'과, 우주의 '영혼'이신 하나님과의 합일입니다. 사실, 개인의 '영혼'과 우주의 '영혼'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이 진실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하나됨을 의식하는 참된 기도를 드립니다. 신과 의식적으로 하나 되는 기도는 항상 조화, 평화, 기쁨, 성공을 가져옵니다. 우리의 의식이 더 높아져서 문제가 더 적고, 따라서 부조화, 불화, 질병, 결핍이 더 적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우리의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내면의 신적 존재가 외부의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영혼'의 평화와 고요함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 안에 조화와 성공을 가져다주는 법칙입니다.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곧 사랑의 법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와의 접촉에 의해 축복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곧 사랑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곧 세상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공급의 법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신은 자기 자신을 당신이라는 개인으로서 표현하고 있으며, 당신의 능력은 실제로 신의 능력입니다. 당신의 활동은 실제로 '의식', '생명'의 활동입니다. 

    "인피니트 웨이"수련법


    1. 허리를 곧추세우고 편안한 자세로 앉는다. 발은 바닥에 가지런히 모으고, 두 손은 무릎 위에 가볍게 얹어놓는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멈추고 내쉰다.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신비적인 원칙 같은 것은 없으며, 몸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하면 된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기를 네다섯 번 반복하면서,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2. 다음에는 "나는 내 안의 그리스도에 마음을 집중합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소리내어 말하거나 마음으로만 그렇게 하거나 상관이 없다. 생각이 들어오면, 그때마다 이 말을 되풀이한다. 누구의 지도나 안내 없이 스스로 명상에 들어가도록 한다.

    3. 누구도 마음을 완전하게 멈춰 세울 수는 없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관심사가 마음에 떠오르더라도 그것과 싸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자주 연습하다보면, 방해되는 생각거리들이 차츰 가라앉는 단계로 진입하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다. 인내심을 갖고 하루에 10분씩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이제는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의식을 옮겨간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당신의 관심을 가질 분야가 아니다. 당신 자신을 향해 "하나님,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절실하게 제기해 놓고, 그 대답을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의 내면에 있으므로, 대답은 당신 자신의 존재의 안쪽에서부터 오게 된다. 고요히 앉아서, "주여, 말씀해주소서. 당신의 종이 여기에 있습니다." 혹은 "아버지,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하소서."라는 의식이 되어 기다린다.

    5. 어떠한 내용이든 주어지는 말씀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전폭적인 수용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걱정거리가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 존재의 근원인 하나님에 대해서, 전지전능하고, 없는 곳이 없이 모든 것에 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을 뻗쳐 보라.

    6. 궁극의 기도란 "하나님,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깊은 물음의 상태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절실한 물음 속에 머물다 보면, 하나님이나 기도에 대한 생각의 상태가 그치고, 갑자기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경지가 펼쳐질 수 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질문도 없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깊고 깊은 평화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생각이 그치면, 내면의 귀가 열리고, 길고 깊은 호흡이 이어지면서, 깊은 안도의 느낌이 다가온다. 무거운 짐을 이제 막 벗어 놓은 것처럼, 감옥 같은 곳에서 비로소 탈출한 것처럼, 홀가분한 평화가 펼쳐진다. 이런 평화는 여러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나 그날의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 일은 한동안 태만했던 일일 수도 있다. 어떤 일이든 편안한 상태에서 신성한 지혜와 힘으로 신성한 안내를 받아서 '함이 없는 함'으로 하게 된다.

    7. 인간적인 근심걱정이나 판단이 끼어들 때마다, '신성한 상태'로 재빨리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연습을 되풀이하면 '클릭!'하는 순간 곧바로 나의 존재를 떠받들고 있는 신성한 기운을 의식하고, 신성 자체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