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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파니샤드 "무엇을 알아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까?"
    나의 서재 2023. 3. 12. 14:41

     

    우파니샤드 정창영

    <우파니샤드>는 내면화의 길로 들어선 인간 정신이 피워낸 꽃이다.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은 명상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하나이고, 자연현상은 인간의 내면 의식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오감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은 궁극적인 실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하나의 궁극적인 실재가 모든 존재의 핵이며, 우리의 참 자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그 힘과 하나이다.
    명상을 통해 자신이 직접 '하나임'을 체험 할 수 있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 궁극적인 실재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태어난 목적이며, 인간 정신은 이 목적을 향해 진화해 나가고 있다.

    <카타 우파니샤드>
    1부 2장
    1-2. 참 자아의 영속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길과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길이 있다. 이 두 길은 목적이 다르다. 어느 길을 택하든 사람은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 자아의 기쁨을 추구하여 인생의 지고한 목표에 도달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일시적인 쾌락을 좇다가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만다.
    삶의 매순간이 참 자아의 영원한 기쁨이냐 아니면 감각적인 쾌락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전환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당장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영원한 기쁨을 주는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당장 감각에 만족을 주는 길을 따라간다.
    5-6. 참 자아는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원성을 초월해 있다. 그래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나와 너' 또는 나와 그것'이라는 이원성을 초월하여 모든 것이 하나의 참 자아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깨달음을 도와줄 수 있다.
    12-13. 지혜로운 구도자는 깊은 명상을 통해, 모든 개념과 시간 너머에 있는 참 자아를 깨닫는다. 심장의 동굴 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참 자아를 깨닫는 사람은 고통과 슬픔이 없는 세계에 도달한다. 육체가 내가 아니고, 마음도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 '나'는 영원한 신적인 참 자아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지극한 기쁨 속에 머문다. 

    3장
    5-9. 식별력이 어둡고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며 오만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혼란한 사람은 순수하고 영원한 불멸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 그는 윤회의 길을 따라 태어남과 죽음을 끝없이 반복한다. 
    그러나 밝은 식별력을 갖추고 마음이 고요하며 가슴이 순수한 사람은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한다. 식별능력을 밝게 유지하고 마음을 잘 제어하는 사람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여 영원한 신성과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고통의 세계로 다시는 내려오지 않는다.

    <문다카 우파니샤드>
    3부 1장
    1. 늘 함께 다니는 정다운 새 두 마리가 같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그 가운데 한 마리는 열매를 따먹느라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아무 집착이 없이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친구를 초연하게 바라보고만 있다.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새는 에고이고, 그것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새는 참 자아이다. 그 둘이 함께 앉아 있는 나무는 육체이고 열매를 탐닉하는 새가 따먹고 있는 열매는 행위이다.
    2-3. 에고를 자기라고 생각하는 동안엔 열매를 탐닉하고 있는 새처럼 집착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참 자아 브라만을 깨달으면 열매를 따먹는 새를 초연하게 바라보는 새처럼 슬픔에 젖지 않는다. 지고한 빛과 사랑의 근원인 자신의 참 자아를 깨달으면 선과 악의 이원성을 초월하여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우주적인 합일 차원으로 들어간다.
    5. 진리에 대한 열망과 부단한 지혜의 연마, 그리고 명상과 감각을 제어하는 훈련을 통하여 기쁨으로 충만한 참 자아에 이를 수 있으며, 순수한 가슴에서 빛나는 참 자아를 볼 수 있다.

    2장 
    3. 참 자아는 경전 연구로 깨달을 수 없다. 토론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없고, 지적인 탐구를 통해서도 깨달을 수 없다. 참 자아는 오직 참 자아를 동경하며 마음을 다해 참 자아를 찾는 사람에게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29:13) 라는 말씀이 이에 해당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슈베타슈바타라 우파니샤드>
    2장
    10. 명상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라. 깨끗하고, 조용하고, 시원하고,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고, 바닥에 울퉁불퉁한 돌이 없고, 먼지가 많이 일지 않고, 비와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동굴 같은 곳. 그러나 너무 안락하지 않은 곳을 찾아 그곳에서 명상 수행에 몰두하라.
    11. 명상이 깊어지면 안개나 연기 같은 형상이 보이기도 하고 강한 바람이나 뜨거운 불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번개처럼 강한 불빛이나 수정처럼 맑은 빛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브라만에 이르는 길 입구에 들어선 것이다.
    12-13. 요가 수행자가 강인한 수행을 통해 5가지 원소로 구성된 육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질병과 늙음과 죽음을 뛰어넘는 새로운 육신을 얻는다. 수행의 첫번째 결과는 육체의 건강이다. 몸의 이곳저곳에 쌓인 불순물이 제거되고, 피부가 탄력과 윤택을 되찾으며,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몸에서 향기가 난다. 이런 증거가 나타나면 수행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5장 10-11. 참 자아는 남자도 여자도 중성도 아니다. 그는 남자의 몸을 입으면 남자가 되고 여자의 몸을 입으면 여자가 된다. 참 자아인 영혼은 욕망과 집착과 망상 때문에 육체 속에 갇힌다. 무슨 음식을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육체의 상태가 변하듯이, 육체 속에 갇혀 있던 영혼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육체가 행한 행위에 알맞은 새로운 육체와 환경 속에 다시 태어난다.

    6장
    16-17. 그는 모든 것을 창조하는 자이다. 그는 모든 것을 아는 자이다. 그는 태어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그는 시작과 끝을 만드는 자이다. 그는 근원이며 만물의 내면에 머무는 참 자아이다. 그는 태어남과 죽음을 지배하는 자이다. 그는 세가지 기운의 주인이다. 이 삶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방황과 거기에서의 해탈도 그에게서 비롯된다. 그는 '아는 자'이며 영원히 현존하는 불멸의 보호자이다. 그가 영원히 이 세상을 통치한다. 그 밖에는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

    <브리하다란야카 우파니샤드>
    5장
    23. 경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브라만을 깨달은 사람은 행위에 의해서 위대해지거나 비천해지지 않는다. 존재의 근원인 브라만을 깨달으면 더 이상 행위에 의해 더럽혀지거나 행위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참 자아를 깨닫고 브라만과 하나 된 사람은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고 상황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브라만과 하나된 사람은 모든 것 속에서 자기 자신의 브라만을 보고, 모든 존재가 자기 속에 있음을 봅니다. 그는 이미 악을 초월했기 때문에 악에 굴복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는 이미 죄를 초월했기 때문에 죄를 짓는 일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죄악과 의심을 뛰어넘어 브라만의 세계에 머뭅니다.

    <찬도기야 우파니샤드>
    4부 24장
    2. 사람들은 재물, 명성, 가족, 친구가 많고 넓은 땅과 큰집을 갖고 있으면 행복하게 여기면서 그런 것들에 의지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예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결코 대단한 것도 아니고 위대한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완전히 독립적인 무한뿐이다. 무한은 어디에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25장
    2. 참 자아에 정신을 집중하여 명상함으로써 참 자아를 깨닫고, 모든 것에서 참 자아를 보며 참 자아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자유속에서 살게 된다. 그가 머무는 곳은 어디든지 그의 편안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그러한 유한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무한한 참 자아를 깨닫지 못하고 유한한 것들의 속박속에서 고통당하는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8부 
    1-2.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거짓 소망에 가려있다. 그러나 거짓 소망에 가려있다고 하더라도 그 진정한 소망은 언제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육체와 관련이 있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일단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 또는 이미 죽은 사람들, 내가 원하고 있지만 아직 얻지 못한 모든 것을 심장 공간 속에서 모두 만나고 얻게 될 것이다. 그곳에 진정한 소망이 있다. 거짓 소망이 그것을 가리고 있을 뿐. 그것은 마치 보물이 묻힌 곳인 줄 모르고 그 위를 계속 서성이기만 하기 때문에 결국은 묻힌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모든 존재들이 매일 깊은 잠 속에서 브라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의 의식이 무지의 어둠에 덮여 있기 때문이다.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
    7장
    1. 자기 내면에 있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 곧 참 자아를 깨달으면 모든 생명체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존재의 이름과 형상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며, 변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두려움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것은 많아도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남과 자기를 구별해서 보는 인식으로 말미암아 가지가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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