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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에서 온 메신저 말리도마
    나의 서재 2025. 3. 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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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이나 적과 친구가 되다'라는 뜻을 가진 말리도마는 어린 시절 예수회 선교사에게 납치되어 신학교에서 15년을 보내고 다시 귀향하여 부족의 입문식을 마치고 다시 백인들의 세계로 나간다는 내용이다. 그는 1956년에 태어나 2021년 생을 마감했다. 이 책에는 20대 초반에 입문식(다른 차원의 세계와 초자연적인 체험)을 마치고 서양 세계로 나가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통 부족 세계와 서양 세계의 양 쪽 모두를 경험하고 이름 그대로 이방인과 친구가 되는 숙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왜 굳이 그렇게 운명지어져야 하는지는 명확한 설명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일방적인 프랑스의 식민정책으로 많은 아프리카의 토속, 전통적인 문화가 파괴되고 많은 원주민들이 죽임을 당했던 상황에 비추어 보면 기계 문명의 서구의 힘과 무력에 무참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 운명의 신(?)은 중재자가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전반적인 책 내용은 과연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목적을 성취하려 이 땅에 현현했는지에 관해 중요하게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실천하기 어려운 입문식이라든가 초자연적인 현상에 바탕을 두고 있어 다소 아쉽다고 볼 수 있다. 머리말 마지막 구절에 자기만의 해답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실제적인 실천 방법은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당시 원주민들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 초자연적인 현상 등은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현 시대의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나는 현대인들을 옭아매고 있는 불안의 근본 원인이 조상과의 원활하지 못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 이외의 많은 문화에서 조상은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와 친밀하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언제나 산 자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며 보살펴준다. 이승과 저승의 인식 사이에서 통로의 하나가 되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성공적인 삶을 위한 지침, 삶에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산 자와 망자의 관계가 조화롭지 않으면 혼돈이 뒤따른다. 서구 세력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병든 문화를 일구어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다가라 부족은 모든 사람이 화신이라고 생각했다. 즉, 영혼이 스스로를 나투기 위해 육신을 갖춘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본질은 영적인 것이며, 이 세상에 온 이유도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함이다. 또 탄생이란 우리가 이미 아는 조상, 이 세상에서 중요하게 할 일이 있는 조상이 이 세상에 당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가라 부족에게는 조상이야말로 산 자들의 진정한 학교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보존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조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환생하지 않은 조상들의 생명에너지는 자연의 생명 속에, 나무와 산과 강과 물속에 스며 있다고 보았다.
    밤에 모두가 잠이 들면, 할아버지는 당신의 방 안에서 멀리 떨어진 밭과 집들을 살펴보았다. 복잡하고 마술적인 안전장치들을 이용해서 밭의 파동에 생각의 주파수를 맞추어, 혹 야생동물들이 밭을 습격하는 것은 아닌지 알아냈다. 할아버지가 불침번을 설 때 사용한 도구는 하늘에서 떨어진 후 한 번도 땅에 닿지 않은 빗물이 가득 든 흙항아리였다. 할아버지는 이 물을 들여다보고 멀리 있는 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했다. 아주 단순한 도구였지마 이것이 제공하는 비전은 아주 정확했다.
    할아버지는 아주 검약했다. 언젠가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에게 소화되지 않은 음식의 무게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주변의 선하고 악한 파동을 인식할 능력을 앗아간다고 말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난다. 과식을 하면 이런 취약성은 더욱 증가한다. 음식의 좋은 맛이 우리 몸에 가할 수도 있는 위험을 은폐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식은 필요악이라는 것이 할아버지의 철학이었다. 몸이란 영혼의 옷에 불과하므로, 몸이 곧 우리 자신이라도 되는 양 너무 많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부족민의 교육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는 능력을 키우는 것과 하나의 존재 차원에만 묶여 있는 몸의 습관을 해체하는 것,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다가 돌아오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과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은 전혀 초자연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의 일부가 되어 현실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일이다.
    인간은 대개 지구보다 더 진화하고 그만큼 중재도 덜 필요한 행성에서 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지구상에 온 이유는 지구의 우주적 기원을 발견하는 일에 동참해서, 우리보다 덜 진화한 존재들에게 자신이 신성한 존재임을 인식시켜주기 위해서라는 말도 들었다. 또 어르신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주의 가족들 중에는 타인을 도우려는 존재만큼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이 지구는 타인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이들이 자신의 이런 욕망을 쉽게 충족시키고, 도움을 갈구하는 이들은 쉽게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의 하나라고 했다.

    나는 빛이 우리 본연의 상태이며, 빛의 강가를 향해 갈 때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도 이해했다. 우리는 여러 번 태어나고 죽으면서 빛에 도달할 것이며, 순식간에 수만 년이 지나갈 것이었다. 빛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타인들이 빛 속에 들어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깨달음을 의미했다. 이미 완벽한 깨달음에 이른 영혼이 연민의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유도 다른 영혼들의 여행을 돕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빛에 속해 있으며, 빛 속에 있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빛 속에 존재하기를 갈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빛을 떠나는 것은 가서 빛의 필요성을 경험하고 새로이 빛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오로지 우리의 내면에서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본성을 부정하면 결국 어마어마한 고통을 자초하게 된다.

    귀소 외삼촌이 오래도록 주술도구를 들여다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너는 이미 네게 있는 것을 찾지 못하고 있어. 칼을 자기 어깨에 두르고 있는 것도 모르고 하루 종일 칼을 찾아다닌 사람처럼 말이야. 목이 말라 냇가에 가서 물을 마시기 위해 몸을 굽히는 순간 칼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오랬동안 그 망할 놈의 칼을 찾아 헤매야 했을까? 그 사람의 기억은 병들어 있었어. 하지만 너는 네 운명에 대해 네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네 등에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안 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 그 전에 기억해내야 해. 기억한다는 것은 곧 너의 운명에 순응한다는 의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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