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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하르쉬의 복된 가르침
    나의 서재 2024. 10. 19. 18:40

     

    마하르쉬의 복된 가르침
    1. Maharshi's Gospel(마하르쉬의 복음)
    자신을 대상들과 동일시하는 이 습이 소멸되면 에고는 순수해지고, 그런 다음 그 근원으로 합일됩니다. 자신을 몸과 그릇되게 동일시하는 것이 육체아 관념('나는 몸이다'라는 관념)입니다. 이것이 사라져야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Q: 어떻게 하면 제가 진아에 도달하겠습니까?
    A: 진아에 도달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진아에 도달해야 한다면, 이는 진아가 지금 여기에 없고, 아직 그것을 얻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새롭게 얻는 것은 또한 상실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영구적이지 않을 것이고, 영구적이지 않은 것은 얻으려고 애쓸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진아에는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진아이고, 그대가 이미 그것(That)입니다.
    실은 그대는 자신의 지복스러운 상태를 모르고 있습니다. 무지가 잇따라 일어나서 그 순수한 진아, 즉 지복 위에 하나의 베일을 드리웁니다. 그릇된 앎이라고 하는 이 무지의 막을 제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노력은 이 무지의 베일을 제거하는 데로 향해질 뿐인데, 그 베일은 자기(진아)를 몸, 마음 등과 거짓되게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 거짓된 동일시가 사라져야 하며, 그러고 나면 진아만이 남습니다.

    자기탐구(Self-enquiry)는 확실히 공허한 공식이 아니고, 그것은 어떤 진언을 염하는 것 이상입니다. 만일 "나는 누구인가?" 하는 탐구가 마음 속으로 묻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탐구의 목적 자체가 온 마음을 그것의 근원에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한 '나'가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탐구는 조건지워지지 않은 절대적 존재로서의 진정한 그대 자신을 깨닫는 단 하나의 틀림없는 수단이며 유일한 직접적 수단입니다.

    Q: 왜 자기탐구만을 진지(진아에 대한 지)에 이르는 직접적 수단이라고 보아야 합니까?
    A: 자기 탐구 수행 외의 모든 수행은 그 수행을 해나가기 위한 도구로서의 마음이 유지되는 것을 전제하며, 마음이 없이는 그것을 닦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고는 수행의 여러 단계에서 더 미세한 여러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지만, 그 자체는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자기탐구만이 에고도 마음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드러낼 수 있고, 우리가 진아, 곧 절대자의 순수하고 무차별한 존재(Being)를 깨닫게 해줄 수 있습니다. 진아를 깨닫고 나면 알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한 지복이고,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Glimpses of the Life and Teachings of Sri Ramana Maharshi(마하르쉬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견문)
    Q: 스승님, 제가 세상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A: 그대 자신을 도우십시오. 그러면 세상을 돕게 될 것입니다.
    그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다르지 않고(별개가 아니고) 세상도 그와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그가 자신을 돕게 되면, 세상을 돕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개아가 진아와 하나가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대의 주의를 삶,죽음, 현상들이라고 하는 이 변화하는 온갖 것들에 고정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을 실제로 보거나 지각하는 행위조차도 생각하지 말고, 이 모든 것을 보는 그것만 생각하십시오. 그 모든 것을 있게 하는 그것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보이겠지만, 차츰 그 결과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면 다년간 매일 꾸준히 수행해야 하며, 그렇게 해서 스승이 만들어집니다. 하루에 15분씩 이 수행에 할애하십니오. 눈을 뜬 채로, 마음을 보는 그것에 흔들림 없이 고정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것은 그대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리기는 하지만, 이러한 집중의 결과는 곧 네댓 달 안에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명상 중에 그대의 모든 생각을, 보는 행위나 그대가 보는 대상에 두지 말고, 확고하게 보는 '그것'에다 두십시오.

    3. Sri Ramana Gita of B.V. Narasimha Swami
    마음 제어를 위한 첫 번째 보조수단으로 구도자에게 보통 제시되는 것은 조식(호흡제어나 호흡조절)입니다.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 보통 변덕스럽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초조해하고, 불안정압니다. 원숭이를 묶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황소를 고삐로 제어하듯이, 호흡을 조절하거나 억제하면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 있습니다. 호흡이 그렇게 제어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의 형태를 띤 마음 활동들이 그칩니다. 생각이 없을 때는 개아의 에너지가 근원 속으로 - 그것의 모든 에너지가 나온 곳, 즉 중심인 심장으로 도로 달려 들어갑니다.
    그 다음, 지식(숨 멈춤)을 확보하는 방법을 살펴보자면, 처음에는 주의를 고정하고 의지를 일으키는 것이 긴장과 피로를 수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단한 수행으로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그 의지 일으키기와 주의가 습관적으로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지식을 생각할 때 그것이 상당히 이완되고, 그대가 호흡을 억제하는 것과 동시에 마음이 마취되어, 마법에 홀린 뱀처럼 고요해집니다.

    자기탐구로 그대가 얻는 이익은 구체적입니다. 그대가 삶의 모든 우환과 슬픔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더 이상 무엇을 원할 수 있습니까?

    Q: 자기탐구에 착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이 자신이 그에 필요한 능력을 가졌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A: 이것은 중요한 예비적 질문입니다. 자기탐구가 시작되기 전에 어떤 선행 경험, 도덕적 분야에서의 어떤 성취가 필수적입니다.
    사람들은 세간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나면 어느 단계에서 감각적 끌림들에 대해 염증이나 혐오감을 느기거나, 여하든 그런 끌림들에 무관심해지고, 그런 끌림과 즐김을 갖는 이 몸의 비참한 찰나적 성품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주로 이번 생에 한 헌신이나 기타 수행의 결과이거나, 아니면 전생에 그런 헌신이나 기타 선한 행위들을 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순수해지고 강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격자, 즉 자기탐구에 착수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그런 능력을 판정할 수 있는 자격 내지 징표들입니다.

    어떤 자격자의 집착이 희미해지고 있을 때는 선한 행위들이 그의 마음을 더 정화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몸, 마음, 말로 하는 긍정적인 선행들은, 그가 몸, 마음, 말을 통해서 해 왔을지 모르는 상반되는 악업을 소멸합니다. 그러나 그 자격자에게 그런 식으로 해소해야 할 오점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해도, 그의 선행들은 널리 세상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지속됩니다. 지혜롭고 완벽한 사람들은 선행을 계속해 나갑니다.

    생전해탈자의 몸은 화장하면 안 됩니다. 진인의 몸은 신의 한 거처이기 때문입니다.

    Q: 마하르쉬께서는 헌신(Bhakti)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저희를 깨우쳐 주시겠습니까?
    A: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대상은 그 자신입니다. 그는 늘 그 자신을 사랑하고, 가능한 최대의 사랑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런 끊어짐없는 사랑의 흐름을 경전에서는 흔히 부단히 흘러내리는 기름 줄기에 비유하는데, 만약 그것이 신을 향하면 그것을 헌신이라고 합니다. "헌신은 지고의 신에 대한 흔들림 없는 애착이다"라고 했습니다.
    범부들은 보통 신이 그들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고, 그들처럼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진인은 인격신이 그 자신에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경우 자기사랑(Self-love)은 신에 대한 사랑이 됩니다. 그의 경우, 헌신은 진아 깨달음으로 정의됩니다.

    4. Crumbs from His Table(마하르쉬의 친존에서 얻은 가르침)
    스리 바가반은 당신의 권위 있는 출판물에서나 질문자들에 대한 답변에서 '탐구(Enquiry)', 즉 "나는 누구인가?"의 방법이 구원에 이르는 가장 쉽고 가장 직접적인 길이라고 거듭해서 말씀하셨지만, 언제 어디에서도 결코 다른 방법과 길들 - 행위요가, 헌신 요가, 아쉬땅가 요가 등-을 폄하하시지 않았다.
    우리가 성취하게 되는 것은, 그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물어 생각의 근원, 곧 첫 번째 생각인 '나'라는 생각을 탐색하고 '고요히' 어떤 답을 기다리면서, 은밀한 침입자(생각이라는 원숭이)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주의 깊게 방지하는 것으로도 성취된다. 스리 바가반의 가르침은 다른 행법들에 덧붙여, 그리고 그 행법들에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실천할 수 있고, 그것도 바로 처음부터 할 수 있으며,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난 이익이 있다.

    스리 바가반은 방대한 공부나 고등교육은 진아 깨달음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며, 때로는 도움이 되기보다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바가반은 진아지가 참된 지이고, 공부로 얻은 어떤 지식도 그에 비할 바가 아니며, 진아지 혹은 진아 깨달음은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행에 의해서만 얻어진다고 덧붙이셨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시골이나 바닷가 혹은 산중으로 물러나 수행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대 자신도 그런 것을 갈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왜냐하면 매 시간 얼마든지 그대 자신 속으로 물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여기저기로 달려가도 그대는 안식을 찾지 못하겠지만, 더 높은 분의 처분에 겸손히 복종하면 안식을 찾을 것이다. 장소들에 대한 상상과 거주지 변경이 많은 사람을 속여 왔다." -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Q: 저는 '나'가 솟아나는 근원에 대해 탐구하다 보면 마음이 고요한 단계에 도달하는데, 그 너머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때는 아무 생각도 없고, 하나의 텅 빔, 어떤 공백 상태가 있습니다. 은은한 빛이 충만한데 저는 그것이 몸이 없는 저 자신이라고 느낍니다. 몸과 형상은 인식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체험은 거의 반시간가량 지속되며 즐겁습니다. 영원한 행복(자유, 구원 또는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런 체험이 여러 시간, 여러 날, 여러 달 동안 유지될 수 있을 때까지 그 수행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전부라고 제가 결론 내리면 옳겠습니까?
    A: 그것은 구원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를 심잠, 곧 생각의 일시적 고요함이라고 합니다. 심잠은 일시적으로 생각의 움직임을 정지시키는 집중을 의미합니다. 이 집중이 끝나자마자 예전에 하던 생각과 새로운 생각들이 평소처럼 밀려드는데, 설사 이러한 마음의 일시적 진정 상태가 천 년을 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생각의 완전한 소멸, 즉 구원 혹은 생사해탈이라고 하는 것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체험을 하는 자, 그 즐거움을 아는 자가 누구인지를 내면에서 탐구해야 합니다. 이 탐구를 하지 못하면 오랜 황홀경이나 깊은 잠(요가 수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의 이 단계에서 적절한 인도를 받지 못해 자신이 구원을 성취했다는 착각에 빠졌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전생에 한 선행의 공덕에 의해, 혹은 특단의 은총에 의해 목표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수행자들은 마음의 이 일시적 고요함(심잠)과 생각의 영원한 소멸(심멸)간의 차이점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합니다. 심잠에서는 생각의 물결이 일시적으로 가라앉는데, 설사 이 일시적 기간이 천 년을 간다 하더라도 그렇게 일시적으로 고요해진 생각들은 심잠이 끝나자마자 다시 일어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영적인 진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합니다. 생각이 고요해지는 그러한 상태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체허하는 순간, 의식을 회복하여 이 고요함을 체험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내면에서 탐구해야 합니다. 어떤 생각도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이러한 깊은 수면 또는 자기최면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이런 체험은 목표를 향해 진보하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지만, 구원으로 가는 길과 요가 수면이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쉬운 길, 직접적인 길이자 가장 빠른 지름길은 탐구법입니다. 이러한 탐구에 의해 그대는 생각의 무리를 더 깊이 몰아넣어, 결국 그 근원에 이르러 그 안에 녹아들게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내면에서 나오는 반응이 있을 것이고, 그대가 모든 생각을 일거에 소멸해 버린 뒤 거기서 휴식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 옮긴이의 말 중
    바가반 스리 라마나가 강조하는 점은, 우리가 바깥의 대상들을 알려고 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 즉 '나'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성을 통해 수집한 바깥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과 정보는 몸과 마음이 소멸할 때 함께 사라지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포함한 인간의 근원적 의문들을 결코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는 그것을 '보는 자'없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한 개인이 사라지면 그에게 존재했던 모든 세계는 그와 함께 사라진다. 따라서 인간의 근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바깥 세계로 향해 있는 시건을 안으로 돌려, 우리 자신을 내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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