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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지 않는 공급자 골드스미스
    나의 서재 2024. 3. 30. 21:18

     

    나는 인간에 대해, 인간이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야말로 내 존재의 바탕이고 배경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나, 나의 본래적인 나였습니다. 나의 인간성이 아닌, 나의 개인적인 마음이나 힘이나 이해를 넘어선 더 큰 나, 그것이 하나님이었습니다. 나의 "큰 자아", 나의 영적인 자아는 하나님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진짜 존재를 구성하시므로, 하나님이 우리들 진짜 존재의 아버지이시므로,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그분의 지혜의 온전함, 그분의 사랑의 온전함, 그분의 생명의 온전함, 그분의 공급의 온전함을 이룩하시고, 확립하십니다. 이러한 전체성(Allness)이 개인의 존재를 이루므로, 우리에게 좋은 것들은 바깥에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접속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것은 즉각 나의 이해를 바꾸어 놓았고, 내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모든 좋은 것은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습니다. 영원함과 불멸성, 신성, 그리스도성, 영성은 모두 우리 자신 안에 이미 갖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감옥에 가두어놓은 광휘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광휘가 자기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부부라고 할지라도 배우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사업가는 투자나 비즈니스, 자신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공급이라는 것이 여러 통로를 통해 올 수 있지만, 공급의 원천은 우리 자신 안에 이미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그 원천의 뚜껑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 새롭고 더 좋은 길이 언제 어디에서든 열릴 수 있습니다. 

    공급자는 영이시고, 그것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영이 보이지 않습니다.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느낄 수도 없고, 들리지도 않으며, 맛볼 수도 없습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바깥세상에서 당신이 보는 것은, 공급자가 '취하는 모습들'입니다. 공급자는 돈으로, 음식으로, 옷으로, 집으로, 자동차로, 사업자금 등등으로 형상을 취합니다. 당신의 영적인 분별력은 이것이 진실된 말이라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훗날 당신은 거기에 대한 증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공급자를 보게 됨으로써가 아니라, 공급자가 '취하는 모습들'을 목격하게 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의 자아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한 부뿐이고, 그러니 오직 하나의 생명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명은 곧 당신의 생명입니다. 내 인생은 당신의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면, 당신의 하나님에게 선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신성한 자아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면, 그것은 곧 당신 자신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당시닝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행하든, 그것은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고, 당신의 신성한 자아에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한다면, 그것은 당신 자신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자아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가는 곳바다 베푸는 또 다른 방식은,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여러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행해지는 자신의 대부분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감사를 표현하는 데에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보이지 않는 근원이라는 깨달음, 이 지구는 물론 다른 수많은 별들 위에서도 모든 좋은 것들을 만들어 내셨다는 깨달음 또한, 나에게는 차원 높은 감사의 표현으로 여겨집니다. 

    당신이 직접 근원에서부터 더 많은 말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어디에서든 주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근원을 깨닫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 삶의 알맹이를 사는 일입니다. 
    몸과 마음을 분주하게 하기 이전에, 먼저 근원을 향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입니다. 세상 만물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근원이고, 활동이며, 본질이고, 자산입니다. 일도 하나님에게 속하고, 휴가도 하나님에게 속하도록 해야 합니다. 영적인 데에 중심을 두고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무한성에만 기대로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삶을 외부적인 가치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 될수록, 우리의 영적인 의식은 발전되어 나가게 됩니다. 영적인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를 온전하게 잘 지내려면,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명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접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진리의 말씀들을 기억하고 되비추어보면서 자주 명상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리가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우리는 진실로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이 기꺼이 진리를 맞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명상"은 "영성을 길어올리는 펌프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몇 달 동안 살다 보면, 새로운 체험이 당신의 인생 안으로 들어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생각으로 헤아리지 않는 순간", "진리의 말씀"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당신의 의식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무엇인가가 의식 안에 떠오르는 것입니다. 뭔가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진리의 말씀"이 필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당신의 귀에 속삭여 주십니다. 이것이 당신이 은혜에 의해 살기 시작하는, 영적 의식의 실제적인 단계입니다. 

    기도와 명상, 영적인 저술들을 읽는 일, 예배에 참석하고 신앙을 배우는 일은, 모두 하나님을 찾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을 "구한다"는 용어가 바로 이런 활동들에 정확히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님과 접속하려고 몸으로 마음으로 애쓰는 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행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깨달음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면, 어디로 찾으러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려는 바로 그 행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음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려 하는 것은, 우리의 손과 발보다 더 가까이, 우리의 호흡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것을 찾으려고 하는 짓입니다!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책들 속을 헤매면서 연구를 해 왔다면, 정신적인 애씀을 이제는 그만 멈추고 마음을 고요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온전히 새로운 세계가 우리에게 열리게 됩니다. 구하고, 찾고, 마음으로 헤아려 찾는 대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있노라면,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거나 찾아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며, 우리를 결코 떠나거나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찾아 헤맬 필요가 있겟습니까? 하나님은 손과 발보다 더 가까이, 호흡보다 가까운 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인간적인 개념을 포기하고, 우리의 일은 단지 우리에게 오늘 하라고 주어지는 것임을 깨달을 때, 두 가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일이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점차 거기에서 들어올려져서 더 고상한 마음으로 일을 할 수가 있게 된다는 것이 첫 번째 변화입니다.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두 번째로 일어나는 변화는, 우리의 삶이 은혜에 의해서 우리에게 제공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영원토록 우리를 향해 쏟아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편으로 올 수도 있고, 임금으로 올 수도 있으며, 투자로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깨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사랑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무지 때문일 뿐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한다면, 우리는 오늘 사랑을 찾았다가도 내일은 증오로 변해있는 사랑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감사했다가도 내일은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활동이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보편적이시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사랑을 찾을 때, 우리는 서로 안에 있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방사되는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 안에서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반응을 하지 않는 소수는 우리의 경험에서 떨어져 나가고, 우리의 세상은 관계에 있어서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랑의 방법으로, 우리의 의식계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생명이고, 사랑의  본질은 남김없이 주는 것이고, 조건 없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고 정죄하는 행위 속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용서될 수 없는 기억이 남아있다면, 거기에는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의지하고 있는 하나님은 당신의 바깥에 계시는 어떤 것이 아니며, 당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분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은 "큰 나"라고 불리는 당신의 진정한 자아, 당신의 존재의 중심에 계시는 "큰 나"입니다. 진정한 당신은 당신의 큰 자아, 하나님의 자녀인 "나", 당신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상속자인 하나님의 아들로 개인화된 하나님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의 모든 부를 이어받은 공동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안다는 것은 조화, 삶의 영원함, 완전함, 존재의 완벽함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건강, 물자의 조달, 인간관계 등에서 어떤 형태로든 결핍과 부족함을 경험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통보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바로 당신 자신 안에서만 바른 앎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책이라면, 당신 자신의 "큰 자아"로 당신을 되돌아가게 만드는 데에 막대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당신 자신의 "큰 나", 바로 그곳이야말로 당신이 하나님을 알아차리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책은 당신에게 영감을 주고 당신을 고양시켜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들을 당신에게 하나님을 드러내어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장소, 당신의 내면에서만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당신의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깨닫기 위한 큰 설음은, 하나님을 묵상하고, 명상하고, 우리들의 존재 안에 있는 실재로서의 하나님을 믿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있음 자체입니다. 그분은 모든 존재의 중심입니다. 그분을 바르게 아는 것 외에,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아는 것 외에,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다른 길을 없습니다. 

    꿈에서 깨어나게 될 때, 당신은 무엇을 보게 될까요?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 병든 사람들과 건강한 사람들,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깨어나는 순간, 당신은 "무한한 존재"로서의 하나님, 그리고 개인화되어 있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개닫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인 시선으로, 당신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사람 안에서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됩니다. 당신의 내적 시선으로, 당신은 이제 선과 악이 아니라, 오직 선만이, 오직 좋은 것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식 안에 받아들인 진리의 씨앗들은 우리가 그것과 더불어 살고, 거듭거듭 연습해야 합니다. 진리의 씨앗들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 서로에 대한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 우리의 적들에 대한 친절과 용서하는 마음, 그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서 자라게 됩니다. 이러한 진리의 씨앗들이 열매를 맺을 때, 진리가 우리 안에서 증거될 때, 그때 우리는 열매를 나눌 수 있습니다. 진리는 치유의 힘을 지니게 되고, 공급을 늘려줄 수 있게 됩니다. 

    "진리"를 듣거나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한 대로, 우리는 "말씀"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진리"를 연구하고, 연습하고, 살아야 합니ㅏㄷ. 왜냐하면 "진리"는 우리의 의식의 활동이 되는 정도에 비례해서만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조화로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생각을 하고, 명상을 하고, 치유를 행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습관이 되어서 날마다 우리의 의식의 활성화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그러므로 진리의 실천은 모든 행위, 우리의 삶의 모든 조건과 환경에 적용됩니다. 진리에 관한 책을 읽고, 진리에 관한 공부를 하고 강의를 듣는 일, 진리에 관한 말씀을 듣는 일은 멋진 활동인 것이 분명하지만, 진리가 깨어 있는 의식 속에서 활동하지 않는 한, 우리는 열매를 계속적으로 생산해 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는 의식 안에서 생각하는 삶을 우리네 삶의 중심 주제로 삼아야 합니다. 일터로 나갈 때에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이 곧 우리가 공급받는 모든 것의 원천이심을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비즈니스의 법칙, 건강의 법칙, 존재의 법칙, 인간관계의 법칙을 자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의 길이자 실제적인 원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음악을 공부하고 연습하는 것은 음악적인 의식을 발전시킵니다. 미술을 공부하는 것은 미술적인 의식을 발전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를 읽고, 공부하고, 연습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인식, 곧 진리에 대한 당신의 영적인 자각을 발전시킵니다. 당신이 어느 정도 영적인 의식을 획득하게 되면, 당신은 더 이상 공부하거나 치료하는 일에 많은 것을 행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적인 의식안에서 살고 움직임으로써 세상에 대한 최면을 넘어서서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을 유지하는 문제에 주로 치중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어느 정도로 성취하느냐는, 당신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공부하고 연습하는 모든 것이 영적인 의식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런 공부를 처음으로 접한 사람이 이런 원리들을 당장 흡수하고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거듭해서 듣고 읽어서, 그것들을 당신의 내면에 담아놓고, 은밀하게 간직하면서, 그것들에 대해 숙고하고, 명상하고, 연습하십시오. 그것들이 나름대로 열매를 맺게 될 때까지, 그때가 되면 당신은 이런 배움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은, 얼마나 빨리 앞서 달려가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멍때리면서 고요하게 자주 긴 시간을 가지는 것, 그것이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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