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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그리고 지혜나의 서재 2023. 8. 13. 15:33반응형
나는 우리가 한계 없는 무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한계는 과거에 학습하여 붙들고 있는 우리 마음속의 관념들일 뿐임을 말이다. 자신이 진정 무엇인지를 깨달으면 우리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한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러면 그 제약들을 쉽게 떨어낼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세상이 정신작용의 산물, 곧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당신이 간밤에 꾼 꿈은 현실이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당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것이다. 우리의 이 '현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물론 이 매일의 깨어 있는 상태로부터 깨어날 때까지는 그것은 생생한 현실처럼 느껴진다.
내가 발견한 새로운 현실이란 나의 있음(my beingness), 그것이었고, 그것이 존재하는 것의 전부였다! 나의 있음이 우주의 불변하는 본질이요 핵심이라는 사실에 나는 물론 펀치를 맞은 것처럼 혼수상태가 되어 해롱해롱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는 온 세상이 완벽해 보였다. 내 몸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그 또한 완벽한 그것의 일부분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은 나의 모든 병증을 단숨에 치유시켰다.
우주의 에너지와 동조되고 조화되어 있으면 결코 피로해지지 않는다. 피로는 오직 마음의 갈등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 나니 우리의 동물 가족은 우리의 친척과도 같음을 알게 됐다. 나는 그들을 내가 좋아하는 존재들로 바라봤다. 좋아하는 동물을 어떻게 먹을 수가 있는가?
대부분의 애정관계에서 상대방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은 거의가 에고의 인정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결혼은 행복하지 않다. 그들은 에고의 인정을 받고자 허구한 날 서로 상대방을 들볶는다. 그것이 결혼생활의 불행을 재촉한다. 무엇이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가져다줄까? 두 가지이다. 공통의 관심사와 우정.
가장 높은 관점으로부터, 나는 물질이란 얼어붙은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움직이고 있는 마음과 다름없음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단지 정신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온 우주가 단지 하나의 정신현상이다. 모든 것이 우리 마듬속의 한 이미지일 뿐이다!
자신의 참자아를 알면 당신은 그것이 그 자체로서 스스로 너무나 충족하여 원하는 모든 것을 풍족하게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당신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이다. 마음이 충분히 고요해져서 마음의 소음을 뚫고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당신은 자기 자신인 진정한 '나'를 발견할 것이다.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기를 힘쓰면 힘쓸수록 성공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완전한 성공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하라.
마음은 오로지 창조한다. 우리가 마음에 품는 것은 실제로 현실이 된다. 마음은 현상을 통해 생각한다. 내가 '신발'이라고 말하면 마음은 그 단어가 아니라 신발의 모습을 그린다. 마음은 '아니'나 '하지 마'라는 등의 말을 형상화하지 못한다. 무엇이든 간에 '안 돼'라고 말할 때, 당신은 그 원치 않는 것의 형상을 마음에 품고 있게 되고, 고로 당신은 원치 않는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습관적인 부정적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에 그저 힘을 더 많이 실어주라. 그러면 그것이 부정적인 생각을 압도하여 물리칠 것이다. 하나의 긍정적인 생각이 잠재의식 속의 수백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을 일거에 물리칠 수 있다.
당신의 진정한 실체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모든 것을 멈추고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을 수만 있다면, 이것이 온전한 자유를 성취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나는 무엇인가?'라는 이 의문을 늘 마음의 배후에 품고 있어야만 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아닌 것이 눈에 띌 때마다 그것을 사랑으로 바꿔놓으라. 오로지 온통 사랑이 될 때만 자유를 얻는다.
배우지 않은 사람이 온전한 자유를 성취하기에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그는 도그마와 사상과 교육과 관념의 껍질들에 덕지덕지 싸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관념이 적을수록, 교육을 적게 받을수록, 세상의 요구에 행동이 덜 지배받을수록 더 거침없이 자신의 참자아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면 우리는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며, 모든 지성을 마음껏 동원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전지전능한 경지로 이어진 지름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로지 원하는 것만을 생각하라. 그러면 그것이 당신이 가지는 것의 전부가 될 것이다.
예수는 오로지 우리에게 자신의 신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왔다. 그는 우리에게 불멸성과 무한성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왔고, 우리를 거기로 데려다줄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우리에게 따를 만한 하나의 본보기를 세워주었다. 그 본보기는 우리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그가 한 것과 같은 일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통해 그와 같은 존재가 되도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픔 없는 지속적인 행복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가?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우리는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한 개인이다'라고 생각함으로써 이 행복으로부터 떨어져나왔다. 그리고 이로써 한계 없는 존재인 우리는 제약을 뒤집어썼다. 자신을 모두로부터 고립시키려면 이 분리를 일으킬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 수단은 바로 마음이다. 우리는 마음을 사용하여 자신의 몸과 외부세계를 창조한다. 그러고는 바로 그 자신의 창조물 속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그 외부세계에서 온갖 것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물질을 창조해내고, 급기야는 그 생각과 물질 속에 흠뻑 빠져들어서 무한한 존재인 자신의 정체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우리가 이 지상에 서 있는 진정한 목적은 우리 본연의 '있음'의 상태 - 흔들림 없는 행복과, 제약 없는 온전한 자유의 상태 - 를 기억해내고 체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본연의 상태임을 깨닫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모든 제약을 놓아 보내기를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을 보든, 무엇을 듣뜬, 무엇을 느끼든 그것은 마음을 통해서,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그곳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니 사고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아무런 힘이 들지 않으면 에고가 없는 것이다. 힘이 많이 들수록 더 많은 에고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힘이 극도로 많이 든다면 당신은 어떻게든 다른 길로 가야만 한다. 힘이 많이 들수록 에고가 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온전히 깨달을 때까지 힘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무론 힘을 들이지 않아도 모든 일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이럴 때 당신은 자신의 참 자아가 된다..
그저 사랑을 느끼라. 꼭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라 그러면 당신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한다. 생각이 행위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생각은 행위의 바탕이고, 생각이 행위를 일으킨다. 깊은 산속 동굴에 홀로 앉아 있는 깨달은 존재가 운동단체들보다 세상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잠재의식을 통해 그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있으므로 그는 모든 사람을 돕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진정한 친구는 당신 자신뿐이다. 당신의 진정한 적도 당신 자신뿐이다. 자신의 참자아를 한계 속에 가둬두는 만큼 당신은 자신의 적이 된다. 자신의 한계를 허무는 만큼 당신은 자신의 친구가 된다.
삶 속의 모든 장소와 모든 상황이 성장의 기회를 선사한다. 성장을 위해 가장 좋은 장소는 바로 당신이 있는 그곳이요, 가장 좋은 때는 지금이다.
성장해갈수록 당신은 성장의 요구를 덜 느끼게 된다. 성장의 과정이란 시작부터 끝까지 생각을 놓아보내는 과정이다. 생각을 완전히 없애면 참자아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성장이란 자신이 아닌 것을 놓아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내면으로 들어갈 때만 모든 행복이 거기에 있음을 깨닫는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이다. 그곳이 바로 행복이 있는 곳이다. 이 행복을 외부의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있는 것으로 여기고 찾아 헤맬 때마다 우리는 거기서 즐거움보다 고통을 더 많이 느낀다.
그러니 이 실상을 깨닫고 우리 자신인 이 무한한 있음을 발견해내려면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마음을 놓아 보내야만 한다. 오로지 이로써만 우리가 찾고 있는 궁극의 행복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부정적인 사고를 되돌려 긍정적인 사고를 충분히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모든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되면 우리는 자신이 앎의 영역, 전지한 상태에 이르러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너무나 환희로운 완전한 자유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더욱 기꺼이 봉사할수록 자신이 모든 사람과 만물과 연결되어 있음을 더욱 깊이 깨달을 것입니다. 사랑받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을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은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큰 기쁨을 경험하는 것은 베풂의 마음을 품을 때이다. 사실 자신의 삶을 잠시 되돌아보면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었을 때가 가장 기뻤던 때임을 깨달을 것이다.
타인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에고를 그에게 주입하려는 것이다.
지적인 의문과 논쟁에 빠지는 것은 에고의 입지를 도와줄 뿐, 당신을 위해 해주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의문을 제기하면 에고가 필요해진다. 진정한 자신을 깨달으면 의문이 없어진다. 에고에게서 벗어날수록 당신은 더 이타적인 사람이 된다. 인간적인 필요나 욕망은 모두가 에고가 부추기는 것이다. 에고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참자아는 모든 것이 자신의 것임을 느끼고 안다. 원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문제에도 빠지지 않는다.
물질세계란 단지 우리의 마음을 바깥의 '세상'으로 투사해낸 것일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이 바깥으로 투사된 것일 뿐임을, 외부에 있는, 우리가 그려낸 그림일 뿐임을 깨달으면 우리는 자신이 그것을 그저 생각을 바꿈으로써 얼마나 쉽게, 심지어는 즉석에서 바꿀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연해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오직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만하면 그것이 자신이 얻을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오로지 원하는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언제나 그것을 얻을 것이다. 단순하지 않은가?
원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창조함으로써 물질을 통달할 수 있게 된 다음에는 마음을 통달하고, 그리고 그 너머로 나아가라.
우리가 하는 가장 큰 실수 중의 하나는, 미래에 창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걸 가질 거야. 저걸 살 거야. 그렇게 하면 그것은 늘 미래에 있게 됩니다. 우리와 항상 거리를 두고 있게 만드는 거지요.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뭔가를 창조하려면 그것이 지금 보이게 해야만 합니다. 지금 그것이 있게 말입니다. 그것은 지금 나의 것입니다!
마음을 깊이 가라앉힐수록 참자아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기분은 더욱 좋아진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만큼 기분이 더 좋다. 생각은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자신을 몸과도, 마음과도 동일시하지 않으므로, 당신은 문제도 고통도 겪지 않는다.
흔들리고 방황하는 마음은 당신의 에너지를 온갖 생각의 형태로 낭비한다. 하나의 생각만 붙잡고 있으면 에너지가 덜 낭비되어 보존된다. 이 보존된 에너지를 참자아에게로 돌리면 참자아가 드러난다. 이것을 하면 할수록 집중이 강해져서 참자아 속에 머물기가 쉬워진다.
자신의 정신적 한계가 자기 스스로 지워놓은 것임을 깨달으면 그는 그것을 놓아 보낸다. 그러면 그의 지적 능력은 한정 없이 올라갈 수 있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나는 무엇인가? 이세상은 무엇인가? 나는 세상과 무슨 인연이 있는가?'라는 의문의 답을 알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타오르면 다른 모든 생각은 떨어져나가고 마음은 극도로 집중된 상태가 된다. 그러면 답이 스스로 나타난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답은 늘 거기에 있다. 생각을 침묵시키면 그것이 드러난다. 가장 좋은 형태의 명상은 의문을 가지고 하는 명상입니다. 의문 없이 그저 고요한 상태에 들면 기분은 좋지만 앎을 얻는 데는 진전이 없습니다. '나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에 대한 답만이 우리를 정상으로 데려다줍니다. 그러니 가장 빠른 길을 가려면 결국 언젠가는 답을 얻어야만 할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한계에 둘러싸인 하나의 몸과 마음에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깨달은 사람은 모든 것, 모든 존재, 모든 원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모두 자신의 참자아로 인식합니다. 그는 만물 속의 있음을 자신의 있음으로 인식합니다.
조리는 음식의 활력과 생기를 죽인다. 과일과 채소는 조리하지 말고 먹어야 한다. 운동의 가장 좋은 방법은 근육이 긴장되고 이완될 때 우주의 에너지가 몸을 드나드는 것을 보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지면 지배력을 가지게 된다. 나쁜 생각을 이겨낼 때까지 그것을 꺼버리고, 바구고, 좋은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당신은 생각을 내려 놓게 될 것이다. 생각을 한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깨닫게 된다. 모든 생각은 제약투성이여서 완전히 아무 생각도 안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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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사랑하는 것, 만유를 사랑하는 것,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가장 쉽고도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이 방법은 어떤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품어 들이게 될 때까지 우리 내면의 사랑의 느낌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당신의 사랑을 당신의 가족, 친구, 민족 그리고 온 세계 사람들에게로 확장하라.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도우려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개인적 사랑에서 보편적 사랑으로 넘어가는 이 단계에서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는,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돕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에게 부담을 지우게 되니까요. 우리와 마주쳐서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만을 도와야 합니다. 이렇게 옳은 방향을 알기 위해 진지하게 우리를 찾는 이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임무이기도 하지요. 역설적인 것은 자신의 작은 자아를 덜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더 생각하면서 좀더 확장된 삶을 살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돕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이들을 도움으로써 우리는 목표를 향해 가는 우리 자신을 돕습니다.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줌으로써 행복해지세요. 삶이 이전보다 행복해지면 그다음 단계는 좀더 밖으로 확장해 나가서 남들을 위해서, 좀더 남들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서 신을 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임을 느끼세요. 왜냐하면 오로지 하나의 있음인 당신밖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타인을 돕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당신의 행동보다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태도다.
서두르는 자는 근심 많은 자이고, 근심 많은 자는 서두르는 자이다.
칭찬은 파괴적이다. 그것은 에고를 부추겨 키워준다.
태도가 행동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당신의 시간을 늘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찾아내는 데에 쓰라. 그러고 나서 영원히 평화로운 행복 속에서 밤낮으로 편히 쉬라.
울음은 할 수 없다는 느낌에서 나온다.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느낄 때는 슬픔 따위는 없다. 우리의 머리는 '아이구, 난 못해. 방법이 없어'하고 생각하는 대신 할 일을 챙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울지 않았을 것이다. 할 수 있다는 확언으로 슬픔을 물리치라.
동정심은 절대로 품지 말아야 한다. 동정심은 상대방의 불행을 돕기 때문이다. 자비심은 그를 이해하고 그에게 최선의 것을 빌어주는 마음이다.
머리가 복잡한 것은 이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행위할 때 거기서 나올 결실에 마음이 팔려서는 안된다. 결과가 좋아도 좋고, 나빠도 좋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것에 집착하지도 말고 저항하지도 말라. 그러면 이 세상을 초월할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매우 환희로운 상태다. 늘 행복하고 싶은가? 감사하는 마음을 지키라. 아무런 의심도 품지 말라. 그러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신께 전적으로 의지하면 의심이 없어진다. 장애를 보지 말라. 그러면 장애물이 없을 것이다.
사실 해야 할 일, 성취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당신은 다 해낸 것이다!
세상은 노예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믿지만 않는다면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이 공짜로 조달해줄 텐데 말이다.
일이 안 풀리고 짜증만 나는 것은 무슨 일이든 무한의 힘에게 맡기지 않고 제힘으로 밀고 나가려고 끙끙대기 때문이다.
당신은 세상이 당신의 주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니, 당신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를 시작해야만 한다.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당신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것이 당신을 세상의 주인으로 만들어준다. 다음 단계는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의 의식을 변화시키라. 의식이야말로 있는 것의 전부이니, 당신이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변하시키고자 힘써야 할 유일한 것이다. 당신의 의식을 완벽해지게 함으로써 세상을 완벽해지게 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것이다.
몸은 마음의 정확한 복사판이다. 몸이란 우리의 의식이 외부로 투사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몸이 완벽하다고는 확신이 잠재의식에 심어질 때까지 잠재의식의 생각들을 바꿔야만 한다. 그러면 그렇게 될 것이다. 완벽한 몸을 만들어내는 것은 '나의 몸은 완벽하다'는 아주 강한 확신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집중된 한 생각입니다.
문제란 곧 우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충실한 경고신호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고통은 참자아를 한정시키는 데서 일어난다. 마음이 불안하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 불안이란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 원하는 일만을 예상하라. 불행이란 우리를 행복으로 몰아가도록 우리 스스로 마련한 채찍질이다. 그 어떤 문제도 지금 여기서 해결할 수 있다.
무엇에든 슬픔을 느낀다면 당신이 그것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라. '이것은 놓아 보내야 할 대상이다.' 그러면 즉시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불행을 느낄 때 거기서 도피하려고 애쓰지 말라. 그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그 이유가 발견될 때까지 내면으로 돌아가라. 그보다 나은 방법은, 참자아로서 있는 것이다.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면 최소한 아침에 한 시간, 저녁에 잠들기 전 한 시간 동안 명상하라. 최대의 결과를 위해서는 일하는 동안에도 아무런 노력 없이도 명상상태가 늘 지속될 때까지 명상 수행 시간을 늘려가라. 고요한 느낌을 유지하여 보존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 후에도 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명상은 언제나 답을 찾는 구도와 함께 해야 한다. 사람들이 일을 통해 추구하는 모든 것은 명상과 함께하면 훨씬 더 잘 성취할 수 있다. 명상은 당신이 세상에서 일을 통해 추구하는 것을 더 빨리, 더 훌륭하게 성취시켜줄 것이다.
내가 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 몇 해가 지나서야 '나'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되더군요. 내가 레스터에 대해,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때로는 '그것'이라고도 부르고 '레스터 그가'하는 식으로 말하니까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다고 놀리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말을 고쳐주는데도 난 '나'란 말을 쓸 수가 없었어요. 왜냐구요? 난 이 몽이 아니니까요.
다른 어떤 것보다 자기 안에서 더 기쁨을 느낀다면 당신은 실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삶에서 기쁨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떤 것을 즐긴다면 그것은 틀렸다. 내면에서 기쁨을 찾으라. 기쁨이 되라. 당신 자신이 온통 기쁨이라면 즐길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문제에 대한 유일한 답은 그대의 참자아를 아는 것이다. 자신의 참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다.
자신의 본성을 깨달으면 그 때 당신은 육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육신이란 하나의 생각인 것이 드러나지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육신이 된 꿈을 꿀 때와 마찬가지로요. 당신은 깨어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맙소사, 모두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난 거였잖아.' 깨어 있는 상태라 불리는 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도 이 몸에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몸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꿈속의 몸이라는 것을 압니다. 꿈속에 있는 한 그것은 흡사 현실 같습니다. 꿈을 깨야만 그것이 현실이 아니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자동차와 동일시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자동차에서 내리거나 자동차를 파는 것이 우리에겐 끔찍한 상실로 느껴지겠지요. 하지만 자동차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건 우리가 잠시 쓰는 운송수단일 뿐이니까요. 그건 우리가 아닙니다. 혹은 다른 식으로 보자면, 우리는 새장 속의 새와도 같습니다. 문을 열어놔도 우리는 날아가기를 해방되기를 거부합니다.
사랑이라 불리는 이것은 다름 아닌 여러분의 본성입니다. 우주의 모든 사랑이 여러분의 본성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이란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과 동일한 것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여러분의 모든 불행은 사랑받고자 하는 갈망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너무나 행복하고 건강하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반응형'나의 서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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