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

바가반과 함께 한 나날

LifenLight 2025. 1. 1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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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친구여, 내 그대에게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이 모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치유법은 동일하다네. 먼저 신의 나라를 찾으시게.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제자리로 들어가 우리 마음 속의 적절한 관점 하에 들어온다네. 신은 지금 그대의 안과 그대의 모든 환경 속에 있고, 그대와 그대 자신의 개인적인 작은 세계는 지금 신 안에 있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대 삶의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제 순서로 있다는 것, 신의 법칙이 그대의 삶과 환경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네. 우리의 삶이 실제로 신 안에서 영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어떤 것도 그 법칙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네. 우리가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신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내면과 주위 그리고 우리의 일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는 그분의 친존을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되네. 그 일이 신의 일로 보는 것은 더욱 도움이 되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 일을 하는 새로운 더 나은 방도를 발견하게 되고, 그 행위 속에서 축복을 받기 때문이네.

Q: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A: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대가 이 생에서 해야 할 일로 운명지워져 있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게 될 것입니다.
Q: 각자가 하도록 운명지워진 어떤 일이 있어 우리가 아무리 그것을 하지 않으려 해도 결국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라면 무슨 자유 의지가 있습니까?
A: 우리가 하게 되어 있는 일은 우리가 하게 될 거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그 일을 하는 육신과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기쁨이나 고통, 곧 그 일이 가져다 줄 즐겁거나 즐겁지 않는 결과에서 벗어날 자유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자신의 참된 성품을 깨달아, 어떤 일을 하는 것으 그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 그 육신이 운명 - 혹은 과거의 업이든 신의 계획이든, 그것을 뭐라 하든 간에 - 에 따라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 결과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항상 자유로우며, 그 자유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습니다.
Q: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무슨 책임, 무슨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A: 그것은 이 생에서 하도록 정해진 여러 가지 일들을 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계획 전체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의지에 의하지 않고는 원자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그와 같은 진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의지에 의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든, '업에 의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보자면, 그는 자신을 그 육신과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써, 그 육신이 한 행위들의 결과인 쾌락과 고통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바가반은 장뇌, 100년 목은 님나무(neem tree) 등을 가지고 만드는 몇 가지 약제를 언급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몸뚱이에 대해 누가 그런 수고를 하려 들겠습니까? 여러 책에서 설명하듯이 최대의 질병은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 즉 탄생병인데, 만약 누가 그것을 튼튼하게 하고 그 수명을 연장하려고 약을 먹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병을 강화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몸뚱이는 우리가 진 하나의 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즉, 짐을 지고 가도록 고용된 짐꾼이, 목적지에 도착하여 그 짐을 부릴 때를 노심초사 고대하듯이 말입니다."

똑같은 진리도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생론에서는 '하나의 실재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탄생도 죽음도 없고, 투사(projection)도 흡인(drawing in)도 없으며, 수행자도 없고, 해탈열망자도 없고, 해탈자도 없으며, 속박도 해탈도 없다, 하나의 단일성만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주위에 이렇게 온통 보이는 이 확실한 세계를 어떻게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이들에게는, 꿈속의 경험을 환기시켜 주고 또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대가 보는 모든 것은 '보는 자'인 그대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보는 자를 떠나서는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견현론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먼저 자기 마음으로부터 대상을 창조한 다음, 자기 마음이 창조한 것을 자기가 본다는 이론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설명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면서 계속 따지고 듭니다. '꿈속의 경험은 아주 짧지만 이 세계는 항상 존재합니다. 꿈 속의 경험은 저 한 사람에 국한되었지만 이 세계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느끼고 봅니다. 이러한 세계를 실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현견론이라고 하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즉, '신이 이러이러한 원소로부터 먼저 이러이러한 것을 창조한 다음, 이러이러한 다른 것들을 창조했다'라고 말해줍니다. 이러한 설명만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족시킬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마음이 만족하지 않고, 이렇게 자문합니다. '어떻게 모든 산하대지와 모든 지도, 모든 학문과, 별과 행성들, 그리고 그것들을 지배하는 혹은 그에 관계되는 법칙들과, 모든 지식이 모조리 진실이 아닐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예, 신이 이 모든 것을 창조했고 그래서 그대가 그것을 봅니다.'
이런 모든 이론은 단지 배우는 이의 능력에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절대는 오직 하나입니다.

저는 시간이 실재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라든가,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또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압니다. 먼저 그것에 대해 알도록 합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의문이 사라질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늘 변합니다. 그러나 영원불면인 어떤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와 시간, 과거나 미래,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합니다. 변치 않고 항상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합시다.

죽지 않음이 우리의 진정한 성품입니다. 우리는 몸뚱이가 그럴 거라고 잘못 여겨 그것이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정으로 불멸인 것을 보지 못하는데, 그것은 단지 우리가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우파니샤드에서 말하기를, 진인은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부가 목적지에 도달하여 짐을 내려놓을 때를 고대하듯이, 육신을 벗어버릴 수 있는 때를 고대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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